심상태 몬시뇰, 조상제사 금령에 대해 교황청 사과 요구‘순교’ 국제심포지엄.. 서구의 ‘순교’ 규정, 동아시아 교회에 그대로 적용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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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필자는 세계종교인 유교중심입니다. 유교는 수천년간 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이 여러 형태로 하늘天숭배.山川祭祀.祖上祭祀 및 冠婚喪祭를 가져오고 주요名節인 元日(春節,설날등), 입춘, 원소절, 청명절(한식), 단오, 중추절(추석), 동지를 중심으로 행사를 가지고 기타의 날에도 家祭와 墓祭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교권의 漢文姓氏와 이름등을 공통요소로 조상제사를 행하고 名節을 지내왔습니다. 漢字를 중심으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변형한 문자를 병용하면서 孔孟의 가르침인 三綱五倫과 仁義禮智信 같은 가르침을 전승시켜온 세계종교 유교입니다. 2차대전 이후에는 대만이나 싱가포르등이 원래의 중국인과 화교중심의 유교문화를 형성하며 중국의 유교문화를 승계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서강대출신 서진교 교수가 과인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서강대 출신이나 예수회가 중국과 한국 유교문화를 이해하는폭이 가톨릭의 다른 계파나 개신교보다 뚜렷하게 강해 호의를 가지고 인정해 준것이며, 스페인의 국왕께서 한국을 형제국이라 외교경로를 통해 전달하셔서, 그 동안 서강대와 예수회에 대한 신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 일본은 유교국가가 아니며, 後發局地的으로 그들이 새로 만든 神道(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유교처럼 경전도 없음)인데, 신도는 일본인이 막부시대의 불교적생활을 토대로 새로 만든 후발 신앙입니다. 일본에는 형식상 유교의 자리가 없고 일본 神道와 승려가 결혼하고 시중에 진출하는 일본 민중불교를 2중으로 같이 믿는 나라면서 기독교를 탄압하던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에 해당됩니다.
@ 일본 강점기에 일본 신도, 불교, 기독교(주로 개신교. 가톨릭은 극소수)가 유교국가 한국에 강제로 포교되었습니다. 을사조약이 무효고, 일본이 항복하여 한국에 종교주권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유교를 믿으면서 강점기 포교종교들을 같이 믿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 불교는 승려가 산간에 머무는 천민승려의 불교로 극소수 일부만 그렇게 살았습니다. 승려가 결혼하며 시중에 진출하는 일본식 불교는 한국 불교가 아닙니다. 일본강점기에 일본 민중불교가 포교되어 승려가 결혼하고 시중에 절을 짓고 일본식으로 포교하는 형태를 보였는데 주권없는 일본 잔재일 뿐입니다.
@ 여하튼 종교문제가 어떻게 되든, 스페인의 국왕께서 가톨릭 예수회의 대학 서강대때문, 한국을 스페인의 형제국이라고 외교적인 경로로 전달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서 비롯된 서강대에 대한 인정은 변할 사유가 없습니다. 스페인 국왕님의 의사표시는 필자(宮 성균관대 임금, 윤진한)가 宮 성균관대 임금과 御 서강대 임금으로 세계에 알려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교황청에서 어떻게 하든 필자가 주안점을 둔 대상은 서진교교수, 서강대, 예수회입니다. 그래서 宮 성균관대=御 서강대임은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 고종과 순종의 후손이며 영친왕.의친왕의 후손인 황사손(이 원)이 유교제사를 주관하길래 宮 성균관대 임금과 御 서강대 임금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황사손이 國王을 맡으라고 추천하였는데,자기들은 정식으로 國王등극이 되지 않았고 황사손이 공식 직함이라고 답변하면서, 필자가 제안한 국왕등극 추천을 세번이나 거절하길래 불가피하게 필자(宮 성균관대 임금. 宮 성균관대 임금과 御 서강대 임금으로 글을 써온지 10년 정도 될것)와 御 서강대 임금이 국왕의 자리까지 맡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이 어떤 종교적 의견을 내도 宮성균관대=御서강대 체제는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수천년 國敎상태로 존재한 유교는 일본의 항복과 을사조약무효라는 UN국제법위원원의 의견 및 한국 국회결의등에 따라 조선(대한제국)의 國敎인 유교를 그대로 다시 승계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