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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성균관대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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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성균관대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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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선비정신 心山 김창숙] (16)성균관대 설립
유교 정신으로 이상사회 구현 꿈…전국유림대회 열어 대학 설립 결의
 
성균관대학교 전경. 사진제공 성균관대학교
◆지식 가르치기보다는 사람을 키워야

통일된 자주 독립국가 건설과 더불어 심산은 유교의 이상사회를 이루려고 애를 썼다. 유학을 배운 선비로서 무너져 가는 유교 정신을 되살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해방 정국에서 심산은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정당에 휘말리기를 마다했고 권력을 잡으려고 나서지도 않았다. 미군정 하의 정치 질서에 휩쓸려 타협과 줄타기를 하려고도 않았다. 민족의 여망이 걸린 반탁과 미소공위 불참 외에 사소한 일에는 가급적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한 정치권력에 초연한 대신 심산은 자신의 오랜 꿈인 교육 사업에 몰두했다.

심산은 일찍이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국채반환을 위해 모은 기금을 친일파들의 손에 넘겨주는 대신 고향의 동지들과 청천서원에 성명학교를 설립한 것은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려면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발로였다. 중국 망명 초기 중국 국민당 요인들의 후원을 받아 고국의 학생 50여 명을 불러 외국어 강습을 시킨 것도 마찬가지 생각에서였다. 2차 유림단 사건을 불러온 고국에서의 성금 모금 역시 만주지역의 황무지에 군정학교를 위시한 독립기지 건설이 목적이었다.

교육자로서 심산은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사람’을 키우고자 했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어질고 정의로운 사람을 키우려고 했다. 세상을 따뜻하고 정의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만 나라의 미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유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인재를 키우고자 한 심산의 꿈은 성균관대학교 설립으로 구체화했다.

◆해방 이후 유림단체 여러 갈등 봉합

해방 직후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림이라는 명패를 들고 성균관으로 몰려들었다. 성균관과 유림조직이 정치 사회 활동에 있어서 상당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결과였다. 유림단체도 대동회 연정회 유림회 명륜회 대성회 등 부지기수였다. 단체와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갈등과 다툼도 적지 않았다. 유림단체들은 심산의 명성을 업고자 했다. 갈등이 깊어지자 유림단체 대표들은 제각각 심산을 찾아와 단합의 대책을 요청했다.

심산은 같은 유교사상을 두고 저마다 단체를 만들어 영도권을 다투는 유림의 행태가 부끄러웠다. 이런 밥그릇 싸움이 계속되면 유교는 망하고 말뿐이라고 생각했다. 찾아온 단체 대표들에게 심산은 우선 기존의 단체를 모두 해산하고 전국 유림대회를 열어 하나의 단체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심산의 제안에 따라 1945년 11월 성균관 명륜당에서 전국 유림대회가 열렸다. 유림 1천여 명이 모였다. 대회에서는 민족 고유문화의 근간인 유교도의의 혁신과 향상, 성균관대학교 설립, 이를 위한 재단의 완성 등이 결의됐다. 단체 이름은 유도회 총본부로 정했다. 심산은 위원장을 맡았고 김구 이승만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유도회 총본부로 뭉쳐졌지만 유림의 단결은 쉽지 않았다. 개혁은 반발을 불렀다. 우선 유림의 인적 구성이 친일파에서부터 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양했다. 좌`우익도 뒤섞여 있었고 지연과 학연의 해묵은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보수 유림의 반발과 이탈도 있었다. 유림을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개입은 유림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항일운동을 통해 대중에게 민족의 지도자로 각인된 심산 김창숙이 아니었으면 단합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유림의 단합과 성균관 대학의 설립에 백범의 도움은 컸다. 오랜 동지 백범은 선비 심산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유도회 관련 일이면 마다치 않고 나서 주었다. 백범이 살해된 후 이승만은 유도회 총재에 이기붕은 고문으로 추대됐다. 백범을 보낸 심산은 이승만의 견제 아래 홀로 유교 개혁의 외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1946년 성균관대학 설립으로 결실

심산과 백범은 군정청 문교부장 유억겸을 만났다. 유억겸은 기독교인이었지만 유교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심산은 유교의 개혁과 부흥 및 성균관대학의 설립을 위해 향교재산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유억겸은 부윤이나 군수에게 관리권이 귀속된 향교재산을 당장 돌려줄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갓 쓰고 도포 입고 향교를 출입하는 자들이 부질없이 향사의 허식만 하면서 향교를 술 먹고 싸우는 자리로 만들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향교 재산을 돌려받으려면 먼저 유림의 최고기관인 성균관에서 감독하는 재단법인을 남한 9도에 만들라고 했다. 전국 향교재산을 하나로 통합해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성균관의 감독 아래 교육 문화 사업을 확장해가라고 제안했다. 유억겸의 제안과 약속은 2년 뒤 군정법령으로 공포됐다.

향교 재산과 별도로 대학을 만들겠다는 심산의 노력은 독지가 이석구의 희사로 실현됐다. 기존 학교법인과 이석구의 거금을 바탕으로 한 재단을 병합한 재단법인이 구성돼 성균관대학은 1946년 9월 개교식을 거행했다. 비슷한 시기 국립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는 종합대학으로 인가됐고 단과대학으로는 동국대학 숙명여대 중앙대학 등이 인가됐다. 그 후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성균관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승격됐다.

심산은 유학자이지만 실천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심산은 성인의 글을 읽으면서 성인이 시대를 구하고자 한 뜻을 얻으려 않는다면 진정한 선비가 아니라고 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심산은 진부한 옛 지식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의 일에 힘을 쓰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유교의 학문은 높고 멀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낮고 가까운 데서부터 순서에 따라 나아가면 마침내 높고 먼 곳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심산은 유교의 폐단을 청산하는 일에 매달렸다. 나약한 타성과 인습적 자존심으로 인한 분열을 청산하고 자립정신과 용기를 키워 유교의 재기를 도모하고자 고심했다.

유교의 재건과 개혁운동에 대한 심산의 생각은 성균관대학 창립식에서 행한 학장 훈시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 성균관대학의 특색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윤리도덕의 진수를 천명하여 우리의 문화를 세계 만국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유교 정신은 결코 옛 봉건시대의 진부한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고 외래 사상이나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숭배하려는 것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점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남의 좋은 것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개혁의 발상이었다.

심산은 학장과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정치적 선동에 휩쓸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신 등교 시간을 엄수하라고 훈시했다.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지 말라는 말이었다.

성균관 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후 첫 입학식에서 심산은 성균관대학의 근본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덕행은 으뜸이며 문예는 그다음이다." 지식을 배우기 전에 동시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도덕을 먼저 익히라는 가르침이었다. 사람을 키우려는 심산의 뜻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기도 했다. 부와 권력의 잣대 아래 양극화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크게 울려오는 훈시다.

서영관 객원기자 seotin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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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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